“여름에는 에어컨을 켜도 소용이 없어요.
불판 위에서 기름이 튀고 김이 차오르면 눈앞이 뿌옇게 안 보여요.”
곽미란 씨는 6년째 급식실에서 일하는 학교 급식 조리사다.
그는 하루 120인분을 점심 전까지 해내야 한다.
커다란 국자는 손목을 짓누르고, 칼은 쉴 새 없이 손을 타고 움직인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조리를 이어가다 보니, 팔에 화상을 입은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다친 줄도 몰랐더라구요. 그만큼 바쁘죠.”
빈자리를 메워줄 대체 인력은 없어 병가나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도 못한다.
한 명이 빠지면 그 몫이 고스란히 나머지 사람에게 덮친다.
최근에는 가공식품 대신 손이 더 많이 가는 수제 메뉴가 늘어 부담은 더 늘어났다.
급식실 내부는 여름이면 체감온도 40도, 습도는 70%를 넘는다.
연기에 눈이 따갑고, 땀은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동료가 어지럽다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어요.”
곽 씨는 이곳을 “주방이 아니라 가스실”이라고 말했다.

일당백,
학교 급식과 싸우는 노동자
1부 남지 않는 사람들
급식 노동의 현실은 채용 현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전국 급식 조리사 채용 미달률은 29%, 이 중 서울은 무려 84.5%였다.

△위 그래프는 2025년 학교 급식 노동자 신규 채용 미달률을 보여준다. 전국 평균(29%)과 서울특별시(84.5%) 수치를 비교한 것이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2025년 상반기 학교 급식실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어렵게 채용해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2024년 상반기 신규 입사자의 22.7%가 6개월 이내에 퇴사했다.
자발적 퇴사율 또한 높다.
2024년 60.4%, 전체 퇴직자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 떠난 것이다.
그 결과 올해 3월 기준 조리실무사의 결원율은 ▲서울 12% ▲인천 13% ▲제주 10%를 기록했다.
이들 지역은 총 611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새로운 사람은 금방 나가고, 남은 사람은 버티는 구조’가 학교 급식실의 현주소다.
△ 학교알리미 서비스에서 내려받은 2025년도 데이터를 가공했다. 학교별 급식 인원(급식 학생수+교직원수)를
조리인원(조리사 수+조리원 수)으로 나눈 값을 조리인원
1인당 식수 인원으로 정의했다. ('기타'의 경우, 타 학교와 공동 조리하는 학교로 통계에서 제외함)
2부 하루 100인분의 숨 가쁜 주방
학교 급식 조리사들이 하나둘 떠나가는 근본적인 원인은 살인적 노동강도다.
데이터저널리즘팀 데이터짱은 급식 조리사가 1인당 몇 인분을 조리해야 하는지, 그 식수 인원에 주목해보았다.
△ 위 지도는 2025년 5월 기준 서울특별시 소재 초·중·고등학교의 식수 인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교육청 권고 식수인원 118명에 따라 학교별 식수 인원을 ‘기준 준수(초록색)’, ‘기준 초과(빨간색)’으로 구분하였다. 관할 교육지원청 단위로 묶은 클러스터의 백분율은 해당 지역 내 기준 준수율을 의미한다.
초중등 교육정보 공시 서비스(학교알리미)로부터 수집한
서울특별시에 있는 초·중·고 1천 138개의 급식 인원 및 조리 인원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25년 서울시 급식 조리사 1인당 평균 식수 인원은 무려 109.5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에서 발표한 타 공공기관 급식실 식수인원(65.9명)의 1.5배 가까운 수준이다.
특히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1인당 식수 인원이 120.7명, 강동송파교육지원청은 118.8명에 달했다.
이 두 지역은 결원율도 각각 35.9%, 23.1%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특별시 교육청은 1인당 식수 인원을 118명(25년 기준)으로 권고하고 있다.
교육청 기준으로 학교별 식수 인원을 분석한 결과, 서울시 전체 학교의 39.5%가 기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일하는 조리사들이 생각하는 ‘적정 노동강도’는 어느 정도일까.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 실시한 ‘학교 급식실 노동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급식 조리사가 생각하는 적정 식수 인원은 60~80명으로, 교육청 기준과 차이를 보였다.

△ 위 자료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 전국 급식실 종사자 6,84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2025년 3월 26일~4월 2일)다. 급식실 종사자들이 생각하는 1인당 적정 식수 인원을 나타낸다.
설문조사 기준 (70명, 최빈값의 중앙값)을 적용한 결과, 전체 학교의 84.1% 기준치를 초과했다.
이는 교육청이 제시한 적정 식수인원과 노동자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 학교알리미 서비스에서 내려받은 2025년도 데이터를 가공했다. 1인당 식수 인원을 급식실 노동 실태 설문조사의 중앙값(70명)을 기준으로 비교하여 '적정'과 '초과'로 구분한 결과다. ('기타'의 경우, 타 학교와 공동 조리하는 학교로 통계에서 제외함)
3부 학교 속 재해다발구역, 가스실 속 사람들
과중한 노동은 조리사들의 몸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근골격계 질환 치료 경험이 있는 조리사는 92.1%에 달했다.
손목·어깨·허리 통증을 호소한 비율은 무려 99.2%였다.
급식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근골격계 질환을 넘어, 조리흄으로 인한 폐암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인아<서울 직업병 안심센터> 부소장은 “직업환경의학에서 말하는 ‘흄’은 원래 뜨거운 증기가 냉각되면서 생기는
초미세 입자(1㎛ 미만)를 가리키는데, 조리흄은 이보다 더 복합적”이라며 “튀기거나 굽는 과정에서 생기는
▲기름 에어로졸 방울 ▲연소 부산물 ▲유기 기체 오염물질 ▲음식 속 수분에서 발생하는 수증기 등이
함께 포함된 유해 물질이다”라고 설명했다.

급식실 노동자가
요리하는 동안 마시는 조리흄

6시간 동안 담배 96개비
피운 공기와 같다.
* 급식 조리 시 발생하는 조리흄의 PAHs(다환방향족탄화수소) 농도는, 6시간 동안 담배 96개비를 피운 사무실 내 PAHs 농도와 유사하다.
출처: Jun Gao (2015). Indoor emission, dispersion and exposure of total particle-bound 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s during cooking. Institute of HVAC Engineering, College of Mechanical Engineering, Tongji University, Shanghai, China.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포름알데히드 등 발암·독성 물질이
다수 포함된 조리흄을 2A군 발암 추정 물질로 지정했다.
특히 기름을 240~270도로 가열했을 때 발생하는 조리흄 속 PAHs 농도는,
6시간 동안 담배 96개비를 피운 사무실 농도와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조리흄의 위험성은 실제 폐암 산재 통계로 나타났다.
정혜경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이후 폐암 산재를 신청한 급식 종사자는
총 208명이며, 이 중 175명이 승인 받았다.
올해 4월 서울특별시교육청은 「학교 급식시설 환경 개선 및 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심사 보고서」에서
조리 종사원 7천 803명 가운데 폐 결절 등 폐질환 소견이 확인된 인원은 3천 347명(약 40%)이라고 밝혔다.
폐암 확진자는 21명으로, 확진율은 약 0.27%에 달했다.
이는 2019년 보건복지부의 국가 암 등록 통계에서 집계된 35~64세 여성 인구 10만 명당
폐암 발생률(0.028%)과 비교했을 때 약 10배 높은 수치다.
2023년 교육부는 조리흄 발생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튀김 요리 주 2회 이내 조리를 권고했다.
데이터짱은 학교 급식 식단에서 튀김류 조리 빈도를 분석했다.
나이스 교육정보 개방포털에서 제공받은 2024년 서울시 초·중·고 급식 식단 약 23만 1천 건을 검토한 결과,
실제 기준을 준수한 학교는 19%에 불과했다.
△ 위 그래프는 나이스 교육정보 개방 포털의 급식 식단 정보 API를 활용해 2024년 1년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주별로 튀김 요리가 2회 이상 제공된 빈도를 집계해, 상위 20개 학교를 히트맵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 나이스 교육정보 개방 포털 급식 식단 정보 API(2024년). 1년간 각 학교 급식 표를 수집해, ‘튀김류 주 2회 제한’을 초과한 주차 비율을 계산했다. 관할 조직 및 학교명 검색이 가능하다.
한편, 튀김보다 조리흄 발생량이 더 많은 볶음이나 구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는 실정이다.
김 부소장은 “볶음과 구이 역시 고온의 기름을 사용하는 조리 방법으로,
장기적으로 노출될 경우 폐암 위험성을 높인다”라고 지적했다.
조리흄 다량 발생 메뉴에 볶음·구이류를 추가하여 전체 메뉴 대비 비율을 분석한 결과, 전체 식단의 74.9%가
조리흄 다량 발생 메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부분의 급식 조리사가 다량의 조리흄에 노출된 채 근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부 낡은 팬과 낡은 폐
조리흄이 가득한 주방에도 불구하고 환기시설은 여전히 부실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21년 실시한 학교 환기 실태조사 당시 기존 설치된 후드가
조리사의 호흡기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같은 조사에서 새우까스를 조리할 때 발생한 조리흄 농도는 외부 공기보다 8배 이상 높았지만,
후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을 점검하는 현장의 모습이다(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제공)
△위 그래프는 전국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 개선 공사 이행 현황을 지역별로 나타낸 것이다. 이행률이 빨간색과 가까울수록 이행률 수치가 적음을 나타내며, 파란색과 가까울수록 이행률 수치가 높음을 나타낸다.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시설 안전과 정보공개 청구)
조리흄의 위험성이 드러나자 전국 시·도교육청은 환기시설 개선 계획을 내놓았지만,
실제 집행은 지역별로 큰 격차를 보인다.
전국 평균 환기시설 정비 사업 이행률은 36%에 불과했다.
제주와 충북은 60%를 넘겼지만, 서울·인천·경북은 25%에도 못 미쳤다.
특히 서울시특별시교육청은 2025년 312개 학교 환기시설 교체를 목표로
1천143억 원을 편성할 것을 계획했으나 실제 집행은 72개교, 205억 원에 그쳤다.
결국 “낡은 팬” 아래에서 조리사들의 폐는 여전히 혹사당하고 있다.
5부 붕괴하는 학교 급식의 미래
학교 급식실은 인력난과 환기시설 개선 지연 → 건강 악화 → 조기 퇴사 → 추가 결원이라는 끝없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대표발의한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학교 급식법)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학교 급식법은
▲학교 급식 종사자의 건강과 안전 보장 ▲필요한 시설·설비 구비 ▲1인당 적정 식수 인원 기준 준수
등을 주요 골자로 한다.
하지만 국회 법안 게시판에는 해당 법안을 반대하는 게시글이 약 1만 1천 건 올라와 있다.
대부분은 “급식 질이 떨어질 수 있다”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과연 급식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곧 급식 질 저하로 이어질까.
데이터짱은 ‘식수 인원’과 ‘급식 만족도’ 간의 관계를 검증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소재 2024년 1인당 식수 인원 상하위 각 60개교의 만족도 조사를 비교해보았다.
식수 인원이 많은 학교의 ‘매우 불만’ 응답 비율은 적은 학교보다 약 3.9배 높았다.
추가 가설 검증에서도 식수 인원이 늘어날수록 급식 만족도가 유의미하게 낮아진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이는 안전한 노동 환경과 적절한 식수 인원 확보가 급식 질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법안을 발의한 고민정 의원은 지난 7월 2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급식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근무할 수 있어야 학생들이 고품질의 급식을 안정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이번 만족도 조사는 단순한 학생 불만 차원을 넘어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급식 조리사들이 꼽은 적정 식수 인원은 60~80명이지만, 현실은 1.37~1.83배에 이른다.
인력이 부족한 학교일수록 조리 시간은 줄고, 조리 과정은 단순화되며, 가공 식품 의존도는 높아진다.
결국, 노동자의 처우 문제를 넘어 학생 건강권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국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2025년 7월 2일 국회 앞에서 학교 급식법 개정 및 적정 인력 기준 마련과 관련해,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제공)

△위 그래프는 2024년 1인당 식수 인원 상하위 각 60개교 대상, 학교 홈페이지 급식 게시판에 접속해 만족도 조사 결과 수집한 결과이다. 회색은 적정 학교, 빨간색은 초과 학교의 만족도 결과 수치를 나타낸다.
현장의 외침

△2025년 7월 17일 학교 급식 노동자 곽미란 씨가 학교 급식 현장의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급식 노동자들은 제도 개선과 인력 충원을 요구한다.
▲인력 보강 ▲작업환경 개선 ▲추적검사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현장의 목소리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뜨거운 주방이 아니라 가스실”이라는 호소는 인력난, 열악한 시설, 조리흄 노출이 뒤엉킨 현실을 압축한다.
근본적인 개선이 없다면 학교 급식의 미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